만성 질환 시대를 위한 맞춤 의학
현대 의학의 뿌리 깊은 관행
의학을 공부하면서 점점 커져가던 내 좌절감.
변화와 혁신을 거부하는 문화와 충돌하는 일.
현대 의학이라는 건축물 전체가 아주 사소한
것조차 바꿀 수 없는 전통에 너무나 깊이 뿌리
박혀 있는 모양새. 돌보는 환자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방식의 변화마저 거부하는 듯.
의구심과 좌절감에 시달리던 나는 의사직을
그만두겠다고 알렸다. 그러나 결국 다른 길은
다시 의학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는 내 관점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더 위험하다
히포크라테스가 했다는 말, "절대로 해를 끼치지 마라"
에서 가장 마뜩잖은 점은 직접적인 위험이
가장 적은 치료법이 언제나 최선의 방안이라는
의미를 이 말이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를 끼치는 일을 전혀 하지 않거나, 적어도
해를 끼치는 위험과 마주하지 않는 의사는 아마
환자에게 도움을 주는 일도 그다지 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때로는 가장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
의학 2.0 시대의 빛과 그늘
의학사는 크게 두 시대로 구분된다.
그리고 나는 이제 세 번째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첫 번째 시대는 히포크라테스로 대변.
나는 그 시대를 '의학 1.0'이라고 부른다.
'의학 2.0'은 19세기 중반에 질병의 세균론과 함께
출현했다. 의학 2.0은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다.
인류 문명을 정의하는 하나의 특징인 이것은
소아마비와 천연두 같은 치명적인 질병을 퇴치.
코로나 치료제의 개발 속도도 놀라웠다.
이는 의학 2.0의 경이로운 능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의학 2.0이 암 같은 장기 질환을 치료하는
쪽에서 이룬 성과는 그보다 한참 못 미친다.
감염병 사망자(1930년대 항생제 등장으로 억제)를
제외하면 전체 사망률은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이는 의학 2.0이 '네 기사 질병'에 맞서는 쪽으로는
거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의학 3.0을 향하여
:개인 맞춤 의학과 정밀 의학의 새 시대
암 환자에게는 시간 자체가 적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너무 늦게 개입했다.
사소한 위험 요소처럼 보이던 것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합쳐져 걷잡을 수 없는 비대칭적인 재앙을 일으켰다.
만성질환도 비슷한 방식으로 작용한다.
몇 년, 수십 년에 걸쳐 쌓이고, 일단 깊이 틀어박히면
몰아내기가 정말로 어렵다. 그러나 흔히 이 사건이
닥치고 나서야 치료가 시작되는 때가 너무 많다.
내가 '의학 3.0'이라고 부르는 이 새로운 의학의'
목표는 종양을 제거하고 수술이 잘 되었기를
바라면서 절개 부위를 꿰맨 뒤 퇴원시키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종양이 출현하고 퍼지지 못하게
예방하는 것, 또는 심근경색 사건을 피하거나,
알츠하이머병으로 나아가는 길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이것이 의학 3.0의 목표다.
기술 발전이 우리를 이 새로운 시대로 이끌
것이라고 믿으며, 이 믿음은 옳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에게 필요한 마인드셋의 진화
의학 3.0이 사실은 기술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우리 마인드셋의 진화, 즉 의학에 접근하는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변화를
크게 4가지로 나눈다.
첫째, 의학 3.0은 치료보다 예방을 훨씬 더 강조한다.
노아가 언제 방주를 만들었을까? 비가 내리기 훨씬
전부터다. 의학 2.0은 비가 내리기 시작한 뒤에
말리는 법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둘째, 의학 3.0은 각 환자를 저마다 다른 독특한
개인으로 본다. 의학 2.0은 모든 사람을 기본적으로
똑같이 대한다. 증거 기반의학의 토대를 이루는
임상 실험을 통해 발견한 사항들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고 가정한다. 증거 기반 의학은 그렇게
발견한 평균값을 각 개인에게 적용하라고 고집한다.
의학 3.0은 증거 기반 의학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서
더 깊이 분석하는 '증거 활용 의학'이라고 생각하자.
셋째, 의학 3.0에서는 위험의 정직한 평가와 수용이
우리의 출발점이 된다. 이 철학적 전환은 위험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관련이 있다. 의학 2.0은 관련된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고 규명하려 시도하기보다 그냥 한 건의
임상 시험을 근거로 요법을 폐기하거나 진행한다.
의학 3.0은 연구를 고려하긴 하겠지만 불가피한
한계와 내재된 편향도 인정한다.
넷째, 의학 3.0은 건강수명, 다시 말해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훨씬 더 주의를 기울인다.
반면에 의학 2.0은 대체로 수명에 초점을 맞추며,
거의 오로지 죽음을 피하는 일에만 몰두한다.
아마 이 부분이 가장 큰 전환일 것이다.
건강수명의 표준 정의 '질병이나 장애 없이 살아가는
기간'은 너무나 미흡하다. 우리는 단지 질병이나
장애가 없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삶에서 바란다.
우리는 생애 후반기 내내 모든 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기를 원한다.
거의 모든 돈은 예방이 아니라 치료 쪽으로 흐른다.
건강수명을 계속 외면하는 태도는 사람들을 병들고
비참한 노년으로 내몰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우리를 파산시킬 것이 확실하다.
당신은 당신 인생의 선장이다
의학 3.0은 더 긴 안목으로 상황을 바라본다.
의학 2.0에서 당신은 다소 수동적으로 배에 실려
가는 승객일 뿐이다. 의학 3.0은 당신에게 훨씬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당신은 충분한 정보를 습득
해야 하고, 어느 정도 의학 지식을 갖추어야 하고,
목표가 명확해야 하고, 위험의 본질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고착화된 습관을 기꺼이 바꾸고,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고, 필요하다면 안전지대를
벗어나 모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너무 늦을
때까지 문제를 외면하지 않으며 불편하고 무서운
운제라도 직시한다. 말 그대로 당신은 게임에
적극적으로 직접 뛰어든다. 그리고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이 시나리오에서 당신은 더 이산 배의
승객이 아니다. 당신은 이 배의 선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