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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세종대왕, 위대한 성군의 따뜻한 얼굴

by sweetpain 2025.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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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은 조선 역사 속에서도 손꼽히는 위대한 성군으로, 많은 분들이 그의 업적을 잘 알고 계시지요. 한글을 창제하시고, 과학 기술을 발전시키며, 농업에도 혁신을 이룬 세종대왕의 노력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답니다.

 

그런데, 세종대왕의 이야기는 단지 위대한 업적에만 머무르지 않아요. 알고 보면 그의 인간적인 매력과 따뜻한 성품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일화들도 참 많은데요. 오늘은 그중에서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 세종대왕의 이야기들을 함께 나눠보려고 해요.

 

예를 들어, 백성을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하고자 초가집에서 머물렀던 일이라든지, 의외로 고기를 무척 좋아하셨던 인간적인 면모까지! 왕으로서의 위엄 뒤에 숨겨진 세종대왕의 따뜻한 마음과 소탈한 일상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천천히 걸어보듯, 세종대왕의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

 

 

 Episode 1_병풍 뒤 숨겨둔 책 

 

어린 시절 세종대왕은 책 읽기를 너무 좋아해서 몸이 아플 정도였다고 합니다. 태종께서 그의 방에서 책을 모두 치우셨지만, 세종은 병풍 뒤에 숨겨둔 책 한 권을 천 번이나 읽었다고 해요. 이 이야기는 세종대왕이 얼마나 학문에 열정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일화랍니다.

 

그 병풍 뒤에 숨겨두고 천 번 넘게 읽었다는 책은 바로 『근사록(近思錄)』이라는 유학 경전이에요. 이 책은 주자학(성리학)의 대표적인 인물인 주희(朱熹)와 그의 제자 유성(劉晟)이 엮은 책으로, '가까이에서 실천할 수 있는 도리'를 정리한 일종의 철학서입니다. 『근사록』은 인간의 도리, 마음을 닦는 법, 군주의 덕목 등에 대한 가르침이 담겨 있어서,

 

세종은 이 책을 통해 어떻게 하면 바른 군주가 될 수 있을지를 스스로 끊임없이 고민하고 배워 나가셨다고 해요.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자신을 다스리는 도구로 삼았던 거죠. 세종대왕의 깊은 성찰과 백성을 향한 애정이 이 책 한 권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고 볼 수 있답니다.

 

 

 Episode 2_고기를 사랑한 왕 

 

세종대왕은 무척 인간적인 면모도 많으신 분이었어요. 그중에서도 유독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요, 바로 ‘고기 사랑’에 대한 이야기랍니다. 세종은 어릴 적부터 고기를 정말 좋아하셨다고 해요. 하루라도 고기 반찬이 없으면 밥맛이 뚝 떨어지고, 급기야는 밥을 먹다 말고 몸이 아픈 척하며 쓰러지기까지 하셨다고 하니, 얼마나 고기를 좋아하셨는지 짐작이 되죠. 이런 모습을 보고 걱정이 된 아버지 태종은 훗날 세종이 왕이 된 후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세종에게는 꼭 고기를 잘 챙겨 먹여라"라는 특별한 유언까지 남기셨다고 합니다.

 

실제로 왕이 된 후에도 세종은 바쁜 국정 속에서도 식사 시간만큼은 고기 반찬이 빠지지 않도록 했다고 해요. 고기 요리를 즐기며 스트레스를 푸셨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지요. 이렇듯 백성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시던 성군이면서도, 때로는 우리와 같은 소탈한 입맛을 지닌 '고기 덕후'셨던 세종대왕의 모습, 참 정겹지 않나요?

 

 

 Episode 3_귤로 전한 마음 

 

귤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던 조선 시대, 특히 겨울철에 맛볼 수 있는 귤은 아주 귀한 과일이었어요. 그 시절엔 왕실에서도 쉽게 구할 수 없을 만큼 값지고 소중한 과일이었죠.

 

그런데 세종대왕은 어느 날, 궁 안에서 한 궁녀에게 살며시 귤 하나를 건네며 조용히 웃으셨다고 해요. 아무 말 없이 손에 쥐어준 귤 하나, 그리고 눈웃음. 그 짧은 순간에 세종의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고 하죠.

 

당시 궁녀는 왕의 손길이 미칠 수 없는 먼 존재였고, 왕 또한 감정을 쉽게 표현할 수 없는 자리였지만, 그 귤 하나에 담긴 마음은 너무도 진하고 깊었습니다. 궁녀는 평생 그 순간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고 전해져요. 작은 과일 하나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겐 큰 위로와 설렘이 되었던 것이죠.

 

이처럼 세종대왕은 단지 위대한 왕이 아니라, 마음을 따뜻하게 나눌 줄 아는 사람다운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소소하지만 진심 어린 행동 속에서 세종의 인간적인 매력이 더욱 빛나는 것 같아요. 🍊

 

 

 Episode 4_집현전 학자를 위한 배려 

 

어느 추운 겨울밤, 세종대왕은 평소처럼 집현전을 조용히 둘러보시다가 뜻밖의 장면을 목격하셨어요. 학문에 몰두하던 신숙주가 책상에 엎드린 채 깜빡 잠이 들어 있었던 것이죠. 방 안은 몹시 차가웠고, 신숙주는 겉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은 채 공부에 열중하다 잠들었기에 꽤 추워 보였다고 해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세종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용포를 벗어 조심스레 신숙주에게 덮어주셨습니다.

 

한 나라의 임금이 학자를 향해 보인 이 조용한 배려는 단순한 온정을 넘어, 학문과 사람을 진심으로 아끼는 리더십의 상징이 되었지요. 이 일화를 통해 세종대왕이 얼마나 깊은 존중과 따뜻한 마음으로 인재들을 대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밤의 용포 한 장은 결국 수많은 집현전 학자들에게 큰 감동과 자긍심을 안겨주었고, 나라의 지식은 더욱 깊어질 수 있었답니다.

 

 

 Episode 5_연꽃 사랑 

 

세종대왕은 연꽃을 무척 사랑하셨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연꽃의 고요한 아름다움과 청렴한 기품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국의 연꽃 명소를 찾으셨다고 해요.

 

열여덟 살 되던 해, 쌍둥이 연꽃이 피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세종은 직접 그곳으로 행차하셨습니다.

쌍둥이 연꽃은 한 줄기에서 두 송이가 나란히 피어나는 매우 드문 현상이었기에, 세종도 무척 신기해하셨다고 해요.

연못 주위를 천천히 거닐던 세종은 그 아름다운 광경을 바라보며 “내 생애 처음 보는 쌍년(雙蓮)이로구나” 하고 웃으셨답니다.

 

그 말은 ‘쌍연(두 송이 연꽃)’을 뜻했지만, 발음이 비슷한 단어 덕분에 다소 익살스럽고 재치 있는 농담이 되어 궁인들 사이에서도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고 해요.

 

이 일화는 세종대왕의 유머 감각과 여유로운 성품, 그리고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엿볼 수 있는 따뜻한 장면으로 전해집니다.🌸

 

 

 Episode 6_노비 출산휴가 제도 

 

조선 시대에는 노비가 아이를 낳아도 고작 일주일 정도만 쉬고 곧바로 일을 해야 했어요.

하지만 세종대왕은 그런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고, 노비에게도 100일간의 출산휴가를 주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이 결정에 신하들이 놀라며 반대했지요. “전하, 저희도 아픈 사람을 찾아갈 시간도 없습니다!”라고 항의했을 정도였어요.

그때 세종은 조용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옆에서 돌봐줄 사람이라도 있지 않느냐.”

그 한마디는 힘없고 돌봄받기 어려운 사람들의 현실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지요.

 

신분의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고, 약자를 먼저 생각한 세종의 따뜻한 통치는 오늘날까지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백성을 하늘같이 여긴 군주, 바로 세종대왕의 진심 어린 배려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Episode 7_형 양녕대군과의 약속 

 

세종대왕은 형인 양녕대군과도 끈끈한 형제애를 나누며 지냈지만, 때로는 형의 거짓말에도 재치 있게 대응하셨다고 해요.

어느 날 양녕대군은 기생 한 사람을 세종에게 소개해주겠다고 했지만, 막상 약속을 지키지 않고 그냥 넘어가 버립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세종은 아무 말 없이 잔치를 열고, 기생에게 양녕대군이 평소 즐겨 듣던 노래를 부르게 했어요.

노랫소리를 들은 양녕대군은 순간 당황했고, 곧 자신이 약속을 어겼음을 깨달아 세종 앞에 엎드려 사과했지요.

그 모습을 본 세종은 꾸짖기는커녕 웃으며 형을 일으켜 세우고, “다음부터는 약속을 지키셔야지요”라며 부드럽게 타이릅니다. 그리고는 그 기생을 양녕대군의 집으로 보내주며, 형의 마음까지 살뜰히 챙겨주는 여유와 배려를 보여주셨죠.

 

이 일화는 세종대왕의 유쾌한 유머 감각과 더불어, 가까운 사람을 대할 때에도 잊지 않았던 존중과 따뜻함을 보여줍니다.

엄격한 군주인 동시에 따뜻한 동생이었던 세종의 인간적인 면모가 참 인상 깊은 장면이에요.

 

 

 Episode 8_건강보다 백성을 먼저 생각한 왕 

 

세종대왕은 말년까지도 안질과 당뇨, 피부병 등 여러 질병으로 큰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특히 안질은 심각해서 재위 기간 중 20년 이상 시력이 계속 악화되었고, 임종 무렵에는 거의 앞을 보지 못하셨다고 해요.

 

하지만 세종은 자신의 건강보다 백성을 위한 정책과 연구를 우선하셨습니다. 병이 깊어 침상에서 일어나기조차 어려운 날에도 신하들을 불러 국정을 돌보셨고, 학문과 과학 연구에도 손을 놓지 않으셨지요.

 

세종은 농사에 도움이 되는 『농사직설』 편찬을 직접 챙겼고, 측우기와 해시계 등 과학기술 개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눈이 거의 보이지 않던 시기에도 한글 창제를 마무리하며 훈민정음을 세상에 펴냈으니, 그 의지와 집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신하들이 병세가 심각하니 정사를 줄이시라 간곡히 권해도, 세종은 “나는 괜찮다”며 백성을 향한 마음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헌신은 단순한 왕의 책무를 넘어, 진심으로 나라를 사랑한 위대한 지도자의 모습으로 남아 오늘날까지 깊은 울림을 주고 있어요.

 

 

 Episode 9_악기 연주로 화합

 

세종대왕은 열일곱 살 되던 해, 아버지 태종으로부터 여러 악기를 하사받았어요. 당시 태종은 어린 세종에게 "정사에 너무 몰두하지 말고, 음악을 즐기라"며 음악을 통한 여유를 권하셨지요. 그 후 세종은 거문고와 가야금 연주에 몰입했고, 곧 놀라운 음악적 재능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혼자 연주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형제들과 함께 악기를 연주하며 자연스레 형제 간의 화합의 시간도 만들어졌지요.

특히 양녕대군과의 사이도 점점 부드러워졌고, 음악을 매개로 진심을 나누는 계기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세종은 훗날에도 음악을 단순한 오락이 아닌,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고 조화를 이루는 도구로 여기셨습니다.

이 일화는 세종대왕이 어릴 때부터 예술적 감수성과 배려심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따뜻한 장면입니다.

 

 

 Episode 10_장영실의 발탁 

 

세종대왕은 사람을 판단할 때 출신보다 능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군주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노비 출신 과학자, 장영실이었죠.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분을 이유로 그의 재능을 무시했지만, 세종은 달랐습니다.

 

세종은 장영실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고, 그를 궁중 기술자로 직접 발탁합니다.

장영실은 세종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측우기, 앙부일구(해시계), 자격루(물시계) 등 획기적인 과학 기구들을 만들어냅니다.

특히 측우기는 세계 최초의 강우량 측정기로, 세종의 농업 정책과 기상 관리에 큰 도움을 주었지요.

 

자격루는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정교한 장치로, 당대에는 상상하기 힘든 첨단 기술이었습니다.

세종은 장영실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가 실험하고 연구할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조성해주었습니다.

 

신하들의 반대와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종은 끝까지 장영실을 믿고 아껴주었지요.

그 결과 조선은 동아시아에서 손꼽히는 과학 기술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습니다.

 

세종과 장영실의 이야기는 지금도 능력과 신뢰, 그리고 포용의 리더십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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